#2 'Travessia' by Milton Nascimento
항해라는 단어를 소리내어 말해봅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가슴 벅차고 떨리는 단어입니다. 항해라는 단어가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이르게 된 데에는 아마도, 우리가 필요한 만큼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다니지 못하는 까닭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우리는 항해하는 감각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죠. 'Travessia'는 여러 뜻을 가진 포르투갈어 단어인데, 그 중에서도 저는 '항해'라는 뜻으로 이 노래의 제목을 이해합니다.-실제 이 노래가 영문 버전으로 발표되었을 땐 'Bridges'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죠.- 미우퉁 나시멘투 Milton Nascimento의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 중에서도 특히 널리 불리우는 이 노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어떤 말이 가장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도입부와 후렴부의 멜로디, 나시멘투의 상쾌하고 간결한 목소리와, 너무나 완벽한 곡의 구성... 노래를 듣다 보면 마치 표면이 잔잔한 드넓은 바다를 자유로이 항해하는 작은 배 위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도입부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노래 전체를 아우르며 반복되고, 우리는 그 음율을 따라가며 어떤 장면들을 상상하게 되죠. 이 곡은 나시멘투가 작곡하고, 브라질의 위대한 작곡자이자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유미르 데오다토 Eumir Deodato가 편곡했는데, 데오다토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아름다운 앨범이 참으로 많거든요.
Milton Nascimento - 'Travessia' in the album <Travessia>(1967)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버전은 물론 1967년 발매된 미우퉁 나시멘투의 원곡입니다. 나시멘투는 브라질의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이지만, 다른 브라질 음악가들과 비교하면 음악적 스펙트럼이 훨씬 더 넓은 음악가입니다. 그 역시 브라질 보사노바의 성공과 함께 등장한 음악가이기는 하지만, 그의 음악을 브라질 음악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이해하기는 어렵죠. 그의 음악에서는 삼바 Samba와 쇼루 Choro등 브라질의 전통 음악 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류 대중 음악과, 클래식, 쿨 재즈, 모던 락, 락앤롤, 포르투갈 파두의 영향이 모두 나타나며, 평생의 커리어 동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계속 변화해왔습니다. 특히 브라질 대중 음악(MPB - Música popular brasileira)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음악가이기도 하죠. 나시멘투의 음악적 변화는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데,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그는 언제나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가라는 것입니다. 지난 번 글('A Felicidade')에서 언급했듯, 조빔에게는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라는 위대한 음악적 동반자가 있었죠. 나시멘투에게도 역시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가 있었는데, 페르난두 브란트 Fernando Brant라는 시인이었습니다. 브란트는 브라질의 뛰어난 시인으로, 평생 나시멘투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파트너로서 그의 아름다운 곡에 가사를 붙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브란트와 나시멘투가 함께 작사한 항해 Travessia는 나시멘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당신이 떠난 내 인생은 내내 밤이었습니다
Quando você foi embora, fez-se noite em meu viver
나는 그토록 강하지만, 오늘은 우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네요
Forte eu sou mas não tem jeito, hoje eu tenho que chorar
나의 집은 내 것이 아니며, 이곳도 마찬가지니
Minha casa não é minha, e nem é meu este lugar
나는 혼자이고 그 사실에 저항할 수 없네요, 내게는 할 말이 많아요
Estou só e não resisto, muito tenho pra falar
(...) 그럼에도 당신을 잊으며 나는 살아갑니다
Vou seguindo pela vida, me esquecendo de você
나는 더 이상의 죽음을 원치 않아요, 내게는 살아야 할 것이 많으므로
Eu não quero mais a morte, tenho muito que viver
나는 다시 사랑을 원할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 해도 아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Vou querer amar de novo e se não der não vou sofrer
나는 더 이상 꿈꾸지 않아요, 나는 이제 내 두 팔로 내 삶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Já não sonho, hoje faço, com meu braço, o meu viver
이 곡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시작하며, 화자는 그런 상실감과 고독으로 인해 죽음에의 충동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곡의 마지막에 가서는, 사랑이 준 긴 꿈에서 깨어나 상실을 극복하고 이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엿볼 수 있죠. 화자는 상실의 시린 아픔이라는 파도에 놓쳐버린 키를 다시 한 번 붙잡고, 자기 삶의 조타수이자 항해사로서 다시금 사랑의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희망적이고 밝은 멜로디를 듣다 보면, 가사가 이토록 절망적이고 슬프다는 데 놀라게 됩니다. 역시 지난번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브라질 음악에는 그러한 정서가 드러나는 곡이 매우 많습니다. 슬픔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상실을 껴안고,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음을 믿는 정서는 브라질 음악의 매우 중요한 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를 드러내는 노랫말 역시 브라질 음악의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텐데요, 그래서 브라질 음악가 중에는 시인이나 작가들이 그토록 많은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사명이 있다면 예민하게 감각하고, 세심히 관찰하고, 성실히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요? 시인마다 천착하는 주제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여기 이 브라질의 시인들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그 감정이 주는 기쁨과 슬픔, 상실의 고통과 그리움을 그토록 끊임없이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노래를 듣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느끼고, 노랫말을 음미하고, 매료됩니다.
Zelia Duncan, Jaques Morelenbaum - 'Travessia' in the album <Interpretam Milton Nascimento: Invento Mais>(2017)
이 곡은 쟈키스 모렐렌바움 Jaques Morelenbaum과 젤리아 던컨 Zélia Duncan이 나시멘투의 음악을 재해석한 2017년 발매 앨범인 <Interpretam Milton Nascimento: Invento +>에 수록된 버전의 뜨라베씨아 Travessia입니다. 우선 쟈키스 모렐렌바움은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과도 무척 인연이 깊은 음악가인데요, 조빔의 앨범에도 여러 번 참여했지만, 조빔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의 음악을 재해석하고, 다시 연주하는 데 힘쓰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첼리스트이자 작곡자, 편곡자, 기획자입니다. 한 번쯤은 오직 그에 대한 아티클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 기회에 다시 한 번 이 훌륭한 음악가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젤리아 던컨은 브라질 MPB 트로피칼리아 음악을 대표하는 밴드인 Os Mutantes에서도 보컬로 활동한 적이 있는 브라질의 가수이자 작곡가인데, 무척 중성적이고도 섬세한 보컬이 아주 매력적인 음악가입니다. 이 앨범은 특이하게도 나시멘투의 아름다운 곡들을 모렐렌바움이 연주하는 첼로 위주의 편곡으로 모은 트리뷰트 앨범입니다. 젤리아 던컨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첼로 사운드와 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요. 이 아름다운 앨범 속에서 단연 빛나는 한 곡을 꼽으라면 망설임도 없이 이 곡을 고르고 싶습니다. 모렐렌바움의 첼로 연주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이 곡은 원곡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원곡보다 훨씬 짧게 편곡함으로서 여운을 더하고 있습니다.
Toots Thielemans - 'Travessia' in the album <The Brazil project Vol.2>(1993)
다음으로는 역시 투츠 띨레망 Toots Thielemans의 버전입니다. 이 곡이 수록된 <The Brazil Project> 앨범은 Vol.1과 Vol.2로 나뉘는데, 두 앨범 모두 제가 아낌없이 사랑하는 앨범들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두 앨범 모두 찾아 들어 보시길 권하고 싶어요. 투츠 띨레망은 벨기에 출신의 하모니카 연주자로,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처음으로 재즈 음악에 접목한 음악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하모니카 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의 연주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만큼 너무나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격조가 넘치는 연주를 하는 음악가죠. 국내의 훌륭한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님도, 라디오에서 흐르는 투츠 띨레망의 연주를 처음 듣고 난 뒤로,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죠. 그만큼 띨레망은 후대의 재즈 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음악가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그가, 하모니카를 통해 브라질의 음악들을 재해석한 앨범을 기획하게 되는데요, 앨범 기획을 위해 선택된 노래들과 새로운 편곡들을 보면 띨레망이 브라질 음악에 대해 가진 높은 이해도와 애정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반 린스 Ivan Lins, 까에따누 벨로주 Caetano Veloso, 질베르뚜 지우 Gilberto Gil, 주앙 도나투 João Donato, 밀똔 나시멘투 Milton Nascimento, 시쿠 부아르키 Chico Buarque, 도리바우 까이미 Dori Caymmi, 쟈반 Djavan 등 한 명 한 명 그 자체로 전설인 브라질 음악가들이 이 앨범에 기꺼이 참여한 것이었겠죠. 띨레망은 하모니카와 휘파람으로 연주에 참여했고, 미국의 작곡가이자 영화 음악가인 마일스 굿맨 Miles Goodman과 역시 1세대 보사노바 음악가라고 할 수 있는 오스카 카스트로-네베스 Oscar Castro-Neves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카스트로-네베스는 거의 앨범 전곡에 기타 연주로 참여하기도 했죠. 브라질 출신이 아닌 음악가가 이토록 훌륭한 브라질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띨레망의 역량도 중요했겠지만 마일스 굿맨과 카스트로 네베스, 그리고 앨범에 참여한 위대한 많은 브라질 거장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항해 Travessia'에는 밀똔 나시멘투가 직접 노래에 참여했습니다. 나시멘투는 기타 반주와 함께 이 곡의 매력적인 도입부를 노래하는데, 가성을 통해 목소리를 마치 악기처럼 사용하는 나시멘투의 팔세토 창법은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만의 독특한 창법입니다.
Os Cariocas - 'Travessia' in the album <Reconquistar>(1991)
마지막으로 오스 카리오카 Os Cariocas가 재해석한 뜨라베씨아를 소개합니다. 오스 카리오카는 1942년 처음 결성된 브라질의 보컬 앙상블로, 삼바 캉성 Samba Canção을 기반으로 음악계에 등장한 그룹입니다. 본래 춤곡이던 삼바를 노래를 통해 재해석한 장르를 삼바 캉성 Samba Canção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삼바 캉성이 보사노바의 탄생에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스 카리오카 역시 1세대 보사 노바 음악가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조빔과 주앙 지우베르뚜가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전부터 두 음악가와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여러 협업을 해왔습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룹이지만, 그들이 보컬 앙상블로 재해석한 브라질 음악들을 듣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을 처음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기쁨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항해 Travessia'가 수록된 이 <Reconquistar> 앨범에는 까에따누 벨로주,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 주앙 보스코, 토키뉴와 비니시우스, 카르톨라 Cartola, 호베르투 메네스칼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반 린스와 까에따누 벨로주,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과 주앙 보스코가 피쳐링으로 참여한 트랙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앨범 가운데서도 가장 좋아하는 앨범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네 사람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중심으로 편곡된 '항해 Travessia'는 정말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제게는 새해를 맞는 대단할 것 없는 의식이 있는데요, 한 해가 넘어가는 열두 시에 지난 한 해를 보내면서 새로운 한 해를 맞는 노래를 듣는 일입니다. 벌써 몇 년째 지켜오고 있는 의식이라,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하루종일 오늘 밤에는 어떤 노래를 들을지 골몰하곤 하죠. 그 노래를 들으면서 한 해를 살아갈 마음가짐을 정하는 일이니까요. 생각 만큼 쉽지는 않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제가 올해를 여는 곡으로 선택한 곡이 바로 이 '항해 Travessia' 였습니다. 평소에도 무척 즐겨 듣는 곡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날, 특별한 시간에 듣는 음악은 또 다르게 들리더군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오늘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긴 항해를 하다 보면, 등 뒤로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과 잔잔한 파도의 도움으로 순조로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날들도 있겠지만, 내가 가진 작은 배에 비하여 궂은 날씨와 험한 파도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지금껏 그래왔고, 분명 앞으로도 그럴 테죠. 그래도 돌아보면 매번 용기를 내어 키를 힘껏 붙잡고 여러 파도를 거쳐온 듯합니다. 이 노래가 저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떤 시련이나 아픔도, 영원하지는 않으리라는. 구름은 걷히고 태양이 뜨리라는. 우리의 인생은 침몰 없는 항해이고, 그 여정은 그 자체로 기적적인 것이라는... 그러니 나는 여전히 꿈을 꾸며 두 팔로 힘차게 노를 저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리라고,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귀에 선연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나시멘투와 브란트가 들려준 용기와 희망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또 한 해를 시작해봅니다. 이토록 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커다란 기쁨과 사랑이 함께하기를 손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