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UM NOH PUREUM NOH

#4 'Noite Dos Mascarados' by Chico Buarque

축제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현실에 발 묶이지 않은 채로 오직 축제의 순간에 집중해본 기억이 어쩐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좋은 음악가의 공연을 볼 때나, 수많은 사람이 모여 중요한 운동 경기를 보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아주 고유하고 특별한 시간을 보낼 때처럼, 아주 잠깐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에 속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런 기회가 매년 찾아오지는 않죠. 하지만 여기, 매년 마법 같은 축제가 찾아오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축제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동참하고, 축제의 기쁨을 함께 누리죠.

브라질은 축제의 나라입니다. 그들에게 축제는 그들의 정체성과도 같은 일이죠. 일 년에 꼭 한 주 정도, 현실의 여러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향락과 열정의 세계로 모든 국민이 함께 빠져드는 그들의 축제는 그들이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축제인 리우 카니발 뿐만 아니라 브라질은 지역 별로 매우 다양한 축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6월의 축제인 페스타 주니나 Festa Junina, 새해 맞이 축제인 헤베이옹 Réveillon, 지비누 Divino 축제, 항구가 있는 대다수 도시에서 1월 1일 열리는 보아 비아젱 Boa Viagem 축제, 브라질의 수호신 노사 세뇨라 아파레시다 Nassa Senhora Aparecida 축제, 아마존의 마나우스 지역에서 가장 큰 보이 붐바 Boi Bumba 축제 등이 있죠. 축제 기간에는 모든 회사와 상점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오직 음악과 춤, 술과 사랑에 몰두합니다. 모든 축제는 제각각 다르지만, 결국 모든 축제는 잠시 현실을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브라질의 여러 노래들 중 축제를 연상시키는 곡들이 많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서 이 축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가면 무도회의 밤 Noite dos Mascardos'은 그런 축제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로 곡의 주인공인 남녀는 축제의 행렬 속에 있습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그들은 축제의 행렬 속에서 어지럽게 얽혀 대화를 나누죠. 이들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Quem é você?

당신은 누구예요? Adivinha se gosta de mim

날 좋아한다면 맞춰봐요 Hoje os dois mascarados Procuram os seus namorados

오늘 밤 우리는 가면 뒤에 숨어

서로의 연인을 찾아 헤메죠

Quem é você?, diga logo

당신은 누구예요? 말해봐요.

Eu sou seresteiro, poeta e cantor

나는 시인이고 가수예요

O meu tempo inteiro só penso no amor

나는 평생동안 사랑만 생각했어요

Eu tenho um pandeiro

내게 탬버린이 있어요

Só quero um violão

나는 기타만 있으면 되는 걸요

Eu nado em dinheiro

나는 돈더미에서 헤엄쳐요

Não tenho um tostão

나는 한 푼도 없어요

Fui porta-estandarte, não sei mais dançar

나는 춤추는 법을 잊었어요

Eu, modéstia à parte, nasci para sambar

겸손하게 들리진 않겠지만, 나는 춤 추기 위해 태어났어요

Eu sou Colombina

나는 콜롬비아 사람이에요

Eu sou Pierrot

나는 피에로예요

Mas é Carnaval, não me diga mais quem é você

하지만 오늘은 축제잖아요, 더 이상 당신이 누군지 말하지 말아요

Amanhã tudo volta ao normal

내일이면 모든 게 평소처럼 돌아올 거예요

Que hoje eu sou da maneira Que você quiser

오늘은 당신이 원하는 뭐든 될게요

O que você pedir, eu lhe dou

당신이 뭘 부탁하든, 당신에게 줄게요


'Noite dos Mascarados' from the album <Vento De Maio>(1967)

처음 소개해드릴 버전은 나라 레앙 Nara Leão의 1967년 앨범 <Vento De Maio>에 수록된 버전입니다. 이 곡은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리메이크 버전들도 모두 듀엣 곡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가면을 쓴 채로 만난 두 남녀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내 오늘 밤엔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죠. 축제는 평소 자신이 누구였는지가 중요해지지 않는 기간이니까요. 누구나 축제 앞에 평등하게 춤추고, 마시고, 사랑하고, 노래하죠.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되어주겠다는 말이 어딘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나라 레앙은 지난 번 글에서도 소개해드렸죠. 나라 레앙은 보사 노바 1세대 음악가들의 뮤즈와도 같은 가수였습니다. 실제로 그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부른 조빔이나 비니시우스, 까를루스 리라의 곡들은 원곡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경우도 많았죠. 브라질의 군부 독재가 시작된 이후에는 앞서서 목소리를 냈던 가수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드러내는 곡이나, 사회 비판적인 곡들 역시 많이 부르곤 했죠. 브라질의 문화 운동인 트로피칼리아 운동에 목소리를 보탠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이 곡 역시 트로피칼리아의 선봉장이었던 지우베르뚜 지우 Gilberto Gil와 함께 불렀습니다. 가면 무도회는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유럽까지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화인데, 실제로 이 무도회의 날에는 하녀들도 가면을 쓰고 나가 귀족과 사랑을 나누곤 했다고 하죠. 이 노래는 축제의 밤을 이 가면 무도희의 밤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직 짧은 축제의 밤 동안만,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것은,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이렇게 끝이 정해진 기쁨은 지난 번 소개해드렸던 '재의 수요일의 행진 'Marcha da Quarta-Feira de Cinzas'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침내 이 두 연인은 내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들은 이내 손을 맞잡고 다시 축제의 행렬 속으로, 사랑 속으로 빠져들죠.

'Noite dos Mascarados' from the album <Chico Buarque de Hollanda Vol. 2>(1967)


다음은 곡의 원작자인 시쿠 부아르키 Chico Buarque의 1967년작 앨범 <Chico Buarque de Hollanda Volume. 2>에 수록된 원곡입니다. 이 곡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리듬입니다. 여러 타악기가 만들어 내는 흥겨운 리듬이 노래 전체를 아우르며 반복되죠. 이 곡의 리듬은 보사 노바나 삼바 같은 전형적인 브라질의 노래의 리듬과는 조금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프랑스의 샹송 같은 느낌을 담고 있죠. 시쿠 부아르키는 조빔과 주앙 지우베르뚜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지만, 동시에 유럽의 여러 음악들로부터도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서는 브라질의 색채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어우러진 듯한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시쿠 부아르키는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교육받았다는 점 역시 그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였고, 어머니는 화가이자 피아니스트였죠. 그렇게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랐으면서도 그는 언제나 브라질 민중과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들에는 민중의 삶과 사회의 단면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죠. 지금까지도 그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브라질 민중의 삶을 너무나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소설 중 한 권이 국내의 음악가인 루시드 폴의 번역으로 출간되기도 했죠.(<<부다페스트>>) 그의 소설 역시 브라질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들은 브라질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죠.


'La nuit des masques' from the album <Viking Bank>(1977)

이 곡은 브라질 뿐만 아니라 특히 프랑스에서 아주 큰 사랑을 받은 곡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프랑스의 샹송을 떠올리게 하는 리듬과 멜로디 때문인데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버전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피에르 바루 Pierre Barouh가 부른 프랑스어 버전의 'Noite dos Mascardos', 'La nuit des masques'입니다. 시쿠 부아르키의 노래들은 프랑스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리우는 경우가 꽤 많은데요, 이 곡은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불리우는 곡 중 하나입니다. 피에르 바루가 부른 이 곡의 성공으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노래가 되기도 했죠.1) 특히 저는 추운 겨울날 거리를 걸으며 이 노래를 듣는 것을 무척 즐깁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거리를 걷다 보면 정말 축제의 한 가운데 놓인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요. 제게는 행복한 겨울을 완성하는 곡 중 하나입니다. 피에르 바루는 원곡의 리듬을 해치지 않으면서, 마치 축제의 고적대를 연상시키는 스네어 드럼을 강조하여 축제의 흥겨운 느낌을 더하고 있죠. 특히 노래 중간 중간에 섞여 있는 호루라기 소리는 축제의 느낌을 한껏 더해주고 있습니다. 제게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 음악을 함께 들으며 축제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프랑스는 일찍이 브라질 음악의 영향을 받아들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두 나라는 일찍이 문화 교류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처음 보사 노바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것도 바로 프랑스였죠.(1편 'A Felicidade'글 참고) 그래서 프랑스 음악과 브라질 음악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꽤 많고, 서로의 영향이 드러나는 부분도 많습니다. 프랑스에는 브라질의 음악을 프랑스 식으로 재해석하여 부르는 음악가들이 꽤 많이 있는데, 이들 역시 천천히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의 보사 노바는 브라질의 보사 노바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La nuit des masques' from the album <My French Heart>(2013)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곡 역시 프랑스 음악가의 버전입니다. 클라라 벨라 Clara Bellar의 이 버전은 다른 버전들보다는 훨씬 차분한 느낌의 버전이죠. 시쿠 부아르키가 직접 듀엣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앨범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곡들을 묶은 앨범인데, 특이하게도 시쿠 부아르키 뿐 아니라 도리 까이미 Dori Caymmi와 이반 린스 Ivan Lins가 참여하여 브라질의 색채를 더했습니다. 클라라 벨라는 2006년에 일찍이 브라질 음악을 재해석한 앨범을 내기도 했는데요(<My Brazilian Heart>), 그 앨범 역시 미우퉁 나시멘투 Milton Nascimento, 도리 까이미, 주앙 보스쿠 Joao Bosco 등 유수의 브라질 음악가들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앨범이 브라질 음악을 프랑스 고유의 느낌으로 재해석한 작업이었다면, 이 앨범은 프랑스 음악에 브라질의 색채를 살짝 더한 결과라 볼 수 있겠네요. 프랑스 음악가들이 재해석한 브라질 음악에는 또 기존의 브라질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음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서로 너무 잘 어우러지죠.

매년 꼭 한 번씩 축제의 기간이 찾아오는 나라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지난 일 년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 압박감을 모두 던져버리고 잠깐 다른 세계에 속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정말 황홀한 일일 것 같습니다. 브라질의 축제는 대부분 연초에 몰려 있어서, 이 축제와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의식 같은 일이라고 하죠. 그들은 그 축제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 또 새로운 한 해를 보내고, 다가올 축제를 기대하며 오늘의 시름을 잊곤 할 것입니다. 매년 새로운 축제의 기억이 하나씩 생긴다는 사실보다 더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축제의 분위기 앞에 모두 평등한 사람이 된다는 것, 오직 춤과 노래,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한 기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브라질 음악에 축제에 관한 노래가 그토록 많은 것은 아마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들은 축제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시쿠 부아르키가 이 노랠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이렇게 살아가는 브라질 사람들의 삶이었을 겁니다. 이렇듯 삶의 아주 작은 한 단면을 통해 브라질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는 것은 그의 음악이 가진 중요한 특징입니다. 노래를 통해 낯선 이국의 삶을 상상하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죠. 브라질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브라질의 노래를 듣다 보면 금방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꼭 한 번 그곳에 가보길 소망하게 되는데, 그것은 브라질 음악이 다루는 주제가 브라질 자체인 경우가 무척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브라질의 숲과 바다, 브라질의 사람들, 그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방식, 그들의 축제... 이렇듯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의 국적, 그리고 브라질이라는 공간적, 정서적 배경에 매우 강하게 밀착되어 있는데, 이는 음악 뿐만 아니라 브라질 예술의 고유한 특징이기도 하죠. 고국을 향한 그들의 유난한 사랑 덕분에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브라질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꿈 같은 축제의 한 가운데에서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날 날을 꿈꿔보기도 하면서요.


1) 프랑스의 한 밴드와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인데, 저는 이 동영상을 무척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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