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O Cantador' by Dori Caymmi
노래를 이야기하는 노래, 그림을 이야기하는 그림, 소설을 이야기하는 소설, 시를 말하는 시,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 왠지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갑니다.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진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겠죠. 누군가는 답을 찾기도, 누군가는 포기하기도, 누군가는 계속 답을 찾아가기로 결정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감상하며 누군가가 얻게 된 자기만의 답을 추측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죠. 저는 늘 그런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는 작품들에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매체가 하나의 도구라면, 역시 그 도구의 성질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직 시의 언어를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는 마음이 있는 반면, 오직 그림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감정과 이야기들도 있죠. 그렇다면 노래는 어떨까요?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노래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노래로만 전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 소개해드릴 'O Cantador'는 이런 질문에 대한 작곡가의 대답과도 같습니다. 'Cantador'는 가수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인데요, 이 노래는 가수라는 소명을 가진 한 사람이, 자신이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백하는 곡입니다. 함께 이 노래를 읽어볼까요?
Amanhece, preciso ir Meu caminho é sem volta e sem ninguém Eu vou pra onde a estrada levar
새벽이 오면, 나는 떠나야 하네
영영 돌아올 수도 없고,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길을
나는 그저 길이 나를 이끄는 곳으로 갈 뿐이지
Cantador, só sei cantar Eu canto a dor Canto a vida e a morte, canto o amor Ah, eu canto a dor Canto a vida e a morte, canto o amor
가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래 뿐이지
나는 고통을 노래하고
삶을, 죽음을,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네
아, 나는 고통을 노래해
삶을, 죽음을, 사랑을....
Cantador não escolhe seu cantar Canta o mundo que vê E pro mundo que vi, meu canto é dor
가수는 자신의 노래를 선택하지 않지
자신이 본 세상을 노래할 수 있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이해한 세상을 위해서, 나는 고통을 노래하지
De que servem meu canto e eu Se em meu peito há uma dor que não morreu? Ah, se eu soubesse ao menos chorar
나와 나의 노래는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아직도 내 가슴에 아직 죽지 않은 슬픔이 남았던가?
아, 내가 우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Cantador, só sei cantar Eu canto a dor De uma vida perdida sem amor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 뿐이라서
나는 고통을 노래하네
사랑을 상실한 삶의 고통을....
'O Cantador' by Dori Caymmi from the album <Dori Caymmi>(1972)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버전은 도리 까이미 Dori Caymmi의 원곡입니다. 그는 브라질의 전설적인 음악가이자 보사 노바의 탄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도리바우 까이비 Dorival Caymmi1)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물려받아 아름다운 노래들을 많이 지었는데요, 이 곡은 그의 곡 중에서도 브라질에서 널리 불리우는 스탠다드 넘버가 된 곡입니다. 그는 지난 번 소개해드렸던 나라 레앙 Nara Leão을 비롯해, 유미르 데오다토 Eumir Deodato, 에두 로보 Edu Lobo 등 유수의 브라질 음악가들의 앨범과 까에따누 벨로주 Caetano Veloso와 가우 코스타 Gal Costa, 지우베르뚜 지우 Gilberto Gil가 함께 한 앨범을 제작한 뛰어난 제작자이기도 했죠. 제가 도리 까이미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 때문입니다. 그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에는 마법적인 힘이 있는 듯 느껴집니다. 늘 조용하게 노래를 부르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울리는 힘이 있죠.
노래 속에서 그는, 가수는 자신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저 그가 발견한 세계를 노래할 수 있을 뿐이라는 그의 가사에서는 그가 노래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은 고통과 비탄을 노래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죠. 삶과 죽음과 사랑과 상실의 고통을 노래하면서도, 끝없이 자신의 노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자문해야 하는 것, 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노래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가수로서의 그가 타고난 숙명일 것입니다. 돌아갈 길이 없고, 함께할 누군가가 없는 고독 속에서도 날이 밝으면 그는 계속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직 그의 길이고, 노래가 그에게 요구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에게 고통이 없었더라면, 잃어버린 사랑이 남긴 고통스러운 상실감이 없었더라면 그는 결코 이 아름다운 곡을 지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평온하고 감미로운 멜로디 속에서 가사에 담긴 슬픔과 체념의 정서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죠. 멜로디는 자신의 그러한 숙명을 차분히 받아들이려는 듯 잔잔히 흘러갑니다. 저는 때로 이 조용한 체념의 감정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격렬한 감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어떤 체념도 고요하지 않다고요... 브라질의 음악가들은 삶이 내포한 그러한 모순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죠. 그래서 언뜻 슬프게 들리지 않는 멜로디로, 지독히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O Cantador' by Toots Thielemans & Dori Caymmi from the album <The Brasil Project Vol.1>(1992)
이전에도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투츠 띨레망 Toots Thielemans의 아름다운 앨범 <The Brasil Project>에 수록된 버전의 'O Cantador'입니다. 컨템프러리 재즈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데이브 그루신 Dave Grusin의 피아노와 카스트로 네베스 Oscar Castro-Neves의 느긋한 기타 연주는 도입부부터 이미 듣는 이의 귀를 강하게 사로잡습니다. 도리 까이미가 직접 보컬로 참여했는데, 원곡이 발표된 이후 적잖은 시간이 흘러서인지 훨씬 더 차분하고 느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죠. 때로는 원곡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지곤 하는 버전입니다. 띨레망의 하모니카는 그의 노래를 천천히 따라가며 곡의 정서를 더합니다. 까이미의 보컬은 어쩐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깨달은 이의 노래처럼 들리기도 하죠. 오랜 시간이 흘러 이 노래를 다시 녹음했을 그의 심정을 상상하다 보면, 어쩐지 마음 한 켠이 아려오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 노래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을, 그 긴 시간동안 매번 느껴왔을 테니까요. 그는 이제 비로소 편안하게 고통을 노래합니다. 그 고통을 이해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 고통이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면 끝나지 않는 고통도 없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그 고통은 삶에서 사라지지 않고 내내 영향을 미치죠. 그만큼 역설적인 일이 있을까요? 동시에 그 시린 아픔은 우리에게 사랑이 있었음을,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빛내던 존재가 있었음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까이미는 평생 고통을 노래했습니다.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않기 위한 가장 솔직한 방법은, 고독 속에서 그 고통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니까요. 그것이 사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가이고, 우리의 삶이 내포한 지독한 모순입니다.
‘Like a Lover' by Sarah Vaughan from the album <I Love Brazil!> (1977)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곡은 전설적인 재즈 보컬 사라 본 Sarah Vaughan이 부른 버전입니다. 이 곡은 영어권 국가에도 널리 소개되어 많은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곤 했는데요, 영어 버전의 제목은 'Like a Lover'입니다. <I Love Brazil!> 앨범은 사라 본의 첫 번째 브라질 음악 앨범으로, 미우퉁 나시멘투, 도리 까이미, 안토니우 까를로스 조빔의 곡들이 수록된 앨범입니다. 그는 이 이후로도 브라질 음악 앨범을 세 장 정도 더 발표하는데요, 그만큼 브라질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음악가입니다. 이 앨범으로 그래미 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죠. 이 버전에 역시 도리 까이미가 보컬로 참여했습니다.
영어 버전의 'O Cantador'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사가 영어로 개사되는 과정에서 이 곡이 담고 있는 깊은 슬픔의 정서가 모두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영어 버전의 가사는 오직 지고한 사랑으로 가득하죠. 당신의 손가락이 닿은 테이블과 당신의 입술이 닿은 컵마저 부럽다고 말하는 화자의 고백은 얼마나 달콤한지요. 아마도 이 노래를 개사한 작사가는, 이 아름다운 멜로디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말들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실제로 이 아름다운 사랑의 노랫말 덕에 'Like a Lover'는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재즈 스탠다드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리우고 있죠.
노래로만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시로만 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브라질의 언어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감정들도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체념적이면서도 희망적이고,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사랑을 꿈꾸고, 환희의 이면에 도사리는 슬픔과 고독의 정서를 이야기하기에, 포르투갈어 만큼 적절한 언어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언어가 그들의 정서에 미친 영향이겠죠. 이런 영향은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인 파두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그 역시 언어가 그들의 음악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일 것입니다. 제게는 브라질 음악을 우리 말로 옮겨 노래해보고 싶은 꿈이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어쩌면 브라질 음악은 오직 그들의 언어로만 부를 수 있는 노래일지도요.
얼마 전 들었던 라디오에서 DJ가 들려준 이야기를 급하게 공책에 옮겨 적어둔 적이 있는데, 그날의 이야기를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브라질 음악에 담긴 특별한 정서를 이토록 아름답게 이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브라질에 애인을 둔 사람처럼 살기로 한다.
현실은 겨울이어도 마음은 여름일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 오는 저녁과 거기에 오는 아침을
동시에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로 한다.
기쁨이면서도 슬픔인 것도 있고,
노인이면서 소년일 수도 있고,
친구이자 애인일 수도 있으며,
열매이자 씨앗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다.
비좁은 현실에 갇힌 나를
반대편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 2021년 01월 22일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 중에서
마지막으로 언제나 생생하게 사랑을 노래하는 턱 앤 패티 Tuck & Patti의 아름다운 노래, 'Like a Lover'를 전해드리며, 독자 여러분이 기쁜 삼월을 맞이하길 기도해봅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이파네마 해변에 세워진 조빔의 아름다운 동상을 보러 방문하죠.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코파카바나 해변에는 도리바우 까이미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만큼 브라질 음악에 많은 영향을 준 음악가라는 걸 알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