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Setembro' by Ivan Lins
세상에는 유독 9월에 대한 노래가 많다는 걸 느낍니다. 많은 음악가들이 유독 9월에 대해 노래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아마도 9월은 무더웠던 여름이 끝나면서 가을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고, 동시에 겨울을 기다리는 마음을 품게 되는 설레는 달이기 때문이겠죠. 물론 그 시기의 세계가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은 노랗고 붉은 빛으로 물들고,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변해버린 바람과 거기 실려오는 향기를 느끼게 되죠.
고대 그리스인들은 9월을 '지평선'이라 불렀다고 하죠. 9라는 숫자가 처음 아홉 개의 수들이 끝없는 순환을 통해 반복되면서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극한의 경계에 서 있는 숫자인 까닭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9라는 숫자는 완성, 완전함,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하죠. 9월을 지평선의 계절이라고, 낭만적으로 말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눈을 감고 벼가 익어가는 드넓은 평야와 펼쳐진 지평선을 상상해보면, 멀리서 불어오는 느린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죠.
오늘 소개해드릴 이반 린스 Ivan Lins의 'Setembro' 역시 9월을 그린 곡이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9월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데요, 이 곡에서 노래하는 브라질의 9월은 우리의 계절과는 다르게, 봄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6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는 브라질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는 시기가 9월인데요, 이번에는 가을의 9월이 아닌 봄의 9월을 상상하며 노래를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으로 소개해드릴 버전은, 원곡자인 이반 린스와 일본의 트럼본 주자이자 영화 음악가인 무라타 요이치 Yoichi Murata가 함께 한 앨범 <Janeiro>에 수록된 'Setembro'입니다. 이 앨범에서는 이반 린스의 아름다운 곡들을 무라타 요이치의 아름다운 편곡으로 들려주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곡입니다.
'Setembro' by Yoichi Murata, Ivan Lins from the album <Janeiro>(2011)
브라질 음악에서 아름다운 노랫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어떤 노래에는 노랫말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노랫말 없이도 차분하고도 서글프고, 달콤한 그리움의 정서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죠. 이반 린스는 제가 처음으로 알게 된 브라질 음악가이면서, 브라질 음악을 깊이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된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 느꼈던 전율과 기쁨은 여전히 제 안에 깊이 자리잡아 이 음악들을 향한, 그리고 이런 음악이 존재하는 세계를 향한, 그리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삶을 향한 사랑을 일깨워주죠. 그런 음악을 만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을 기적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기적처럼 그는 제게 찾아왔습니다. 너무나도 우연히 내게 찾아온 노래를 처음 듣고, 완전히 사랑에 빠졌던 경험이 있나요? 저는 우리가 그런 경험에 기대어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그런 경험이 삶을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든다고요.
이반 린스는 현대의 브라질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보사노바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의 브라질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는 음악가라고 할까요. 브라질 대중 음악 MPB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끝없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있죠. 그의 음악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불리우고 재해석되는 브라질 음악이기도 합니다. 브라질 고유의 음악보다는 보다 인터내셔널 한 음악이라고 할까요? 그런 이반 린스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노래의 멜로디일 것입니다. 브라질 음악은 대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멜로디와 화성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데, 린스의 음악은 이러한 점에서 차별성을 가집니다. 그의 곡들은 대부분 매우 다채롭고 화려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고, 화성의 진행 역시 브라질의 보사노바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죠. 그의 음악은 특히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 사라 본 Sarah Vaughan, 퀸시 존스 Quincy Jones,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조지 벤슨 George Benson, 투츠 띨레망 Toots Thielemans, 데이브 그루신 Dave Grusin, 스팅 Sting, 다이아나 크롤 Diana Krall,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Barbara Streisand 등 미국 대중 음악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노래를 재해석하고, 다시 불렀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지 벤슨이 재해석한 'Dinorah, Dinorah', 퀸시 존스가 재해석한 'Delas', 스팅이 재해석한 'She Walks This Earth'는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하기도 했죠.
그가 브라질 음악가이면서도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며 받은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그 역시 보사 노바를 들으며 성장했지만, 동시에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나 팻 분 Pat Boone같은 정통적인 미국의 가수들을 우상으로 여기며 자랐습니다. 재즈 음악에도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포르투갈의 파두 Fado를 사랑했습니다. 린스는 화학 공학을 전공하면서 정규적인 음악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았는데, 그가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고유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Setembro' by Quincy Jones from the album <Back on the Block>(1989)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버전은, 1989년에 퀸시 존스가 발표한 히트 앨범 <Back on the Block>에 수록된 버전의 'Setembro'입니다. 이 버전은 이반 린스의 원곡보다 훨씬 더 유명해진 버전이기도 한데요, 너무나 아름답게 편곡된 버전이기도 하지만, 이 곡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면면이 매우 화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 곡의 보컬엔 사라 본과 아카펠라 섹스텟인 테이크 식스 Take 6, 기타엔 조지 벤슨, 피아노에는 허비 행콕 Herbie Hancock, 색소폰엔 제럴드 올브라이트 Gerald Albright 등 재즈의 거장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노래의 전반에 흐르는 테이크 식스의 아카펠라와 후반부에 흐르는 스캣은 이 곡의 묘미이기도 하죠. 비교적 단순한 멜로디 구조를 통해 이토록 화려한 편곡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퀸시 존스만의 역량이라 할 수 있겠죠. 이반 린스의 아름다운 곡을 향한 퀸시 존스의 화려한 헌사라는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어떤 시기를 지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는 것. 길었던 겨울을 지나 봄의 무거운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딛는 사람, 그리고 그 소중한 순간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장면.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런 연상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곡의 부제가 'Brazillian Wedding Song'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노래의 제목은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죠. 주례 단상 앞에 두 사람이 마주 서 있을 때 이 노래가 흘러 나온다면 얼마나 낭만적일까요. 결혼식의 어떤 과정보다도 이 노래가 둘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요.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노래를 들려준다면, 그것은 어떤 말보다도 더 진실된 고백이 될 것 같습니다. 단 한 분이라도 이 노래로부터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면,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일에도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Setembro' by Ivan Lins from the album <Nove Tempo>(1980)
다음 소개해드릴 곡은 1980년 발표된 이반 린스의 원곡입니다. 이 앨범은 린스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 성공적인 앨범 중의 하나로, 여러 히트 송이 포함된 앨범이기도 합니다. 'Setembro'를 포함하여 'Bilhete', 'Novo Tempo', 'Arlequim Desconhecido' 등의 곡들은 이후 그의 커리어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이 되었죠. 이미 원곡에서부터 곡의 구조와 화성이 너무나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후 발표된 리메이크 버전들은 원곡의 구조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이반 린스는 위대한 작곡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가수이기도 합니다. 그의 노래들을 듣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로 노래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Setembro'처럼 가성을 활용해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보사 노바 스타일로 매우 편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한편, 많은 노래에서 굉장히 힘 있는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의 창법 역시 매우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 그가 조빔의 음악을 재해석한 앨범이나, 벨로주의 노래를 다시 부른 곡들을 들어보면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음악 역시 다른 예술 장르만큼 효과적으로 서사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장일까요? 물론 오직 한 곡의 노래로 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렇지만 어떤 노래는 우리에게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경험하게 합니다. 멜로디에 몸을 완전히 맡긴 채로 노래를 듣다 보면, 우리는 때로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이동하고, 그렇게 이동하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것은 노랫말의 안내일 수도 있고, 이 노래 처럼 오직 멜로디와 화성의 안내일 수도 있죠.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건, 이 노랠 듣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 속 아주 작은 한 켠에서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노래를 듣기 전의 우리보다, 더 성숙하거나 멀리 있거나,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 됩니다. 아주 조용히, 지나간 시간들의 문을 닫고 새로운 시기로 발을 내딛는 사람이 됩니다. 아마도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성장하는 동안 독자인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것처럼요.
'Septiembre' by Pedro Aznar(1982)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버전은 아르헨티나 음악가인 페드로 아즈나르 Pedro Aznar가 부른 'Septiembre'입니다. 어쩐지 조금 더 감상적이고 슬픈 느낌이 드는 버전인데, 아즈나르는 비교적 단출한 구성으로 이 곡을 편곡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반 린스는 페드로 아즈나르의 이 버전을 'Setembro'의 가장 완성적인 버전이라 극찬했다고 합니다. 페드로 아즈나르는 팻 매스니 그룹 Pat Matheny Group에서 초대 보컬을 담당했을 만큼 아름다운 노래를 많이 부른 가수인데요, 아르헨티나의 음악 역사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수입니다. 팻 매스니는 특히 가사가 없는 노래를 통해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보컬을 찾고 있었는데, 마치 미우퉁 나시멘투의 허밍을 연상시키는 아즈나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이 찾던 목소리라 생각했다고 하죠.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 겪어보지 않은 유년, 방문한 적 없는 공간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일이 가능할까요? 이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 'Setembro'에는 분명한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 있는데, 정작 무엇이 그리운지를 떠올리다 보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시기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죠. 그런 것은 아마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 지니는 특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하곤 하죠. 고향이 아닌 곳을 떠올리면서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감상에 젖기도 합니다. 그리움은 우리가 가진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강렬한 감정일 것입니다. 그리움을 우리를 무척이나 슬프게 하기도, 두렵게 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때로 다른 어떤 기억보다도 우리를 위로하니까요. 사실은 없었던 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고 믿게 하는 작품, 잊고 있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은 그래서 더 소중한 게 아닐까요?
제게는 너무나 특별한 음악가인 이반 린스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의 앨범 중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앨범은 1979년에 발매된 <A Noite>라는 앨범인데, 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꼭 한 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들어봐야 할 재즈 스탠다드 앨범을 꼽을 때 심심찮게 선정되는 앨범이기도 하고, 그의 대표곡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기도 하거든요. 제가 막 스무 살이 되던 때즈음 거의 일 년 내내 이 앨범만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 선물 같은 기억을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과 나누고 싶네요. 이반 린스가 'Setembro'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봄처럼, 여러분께서도 아름다운 봄을 또 한 번 만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