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Dans mon île' by Henri Salvador
'완연하다' 라는 말은 꼭 봄을 위해서 존재하는 단어인 것 같죠. 어느덧 봄이 완연해졌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매일 듣던 노래들도 어쩐지 더 반갑게만 들리는 계절입니다. 친구들과 소풍을 가거나 꽃이 핀 거리를 종일 걸어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창가에 가까이 앉아 봄과 어울리는 노래를 듣는 일로 게으르게 봄을 만끽하곤 합니다. 한없이 게을러 지고 싶은 마음, 그 역시 봄이 가진 성질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곡은 그렇게 게으름을 찬미하는 곡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무엇도 걱정하지 않고, 내일을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따뜻한 햇살 아래 고요한 사랑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그린 곡인데요. 먼저 원곡자인 앙리 살바도르 Henri Salvador의 1957년 버전 'Dans mon île'를 들어보시죠.
'Dans mon île' by Henri Salvador from the album <Dans mon île>(1957)
Dans mon île Ah comme on est bien Dans mon île On n'fait jamais rien
나의 섬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좋은지
나의 섬 안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On se dore au soleil qui nous caresse Et l'on paresse sans songer à demain
우리를 어루만지는 햇빛을 느끼며
내일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느긋할 뿐이죠
Dans mon île Ah comme il fait doux Bien tranquille Près de ma doudou Sous les grands cocotiers qui se balancent En silence, nous rêvons de nous
나의 섬 안에서
아, 어찌나 달콤한지
아주 조용하게, 흔들리는 커다란 코코넛 나무 아래서
담요를 가까이 두고
고요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꿈을 꾸죠
Dès la fin du jour Elle accourt me tendant ses bras dociles Douce et fragile dans ses plus beaux atours Ses yeux brillent Et ses cheveux bruns S'éparpillent
하루가 끝날 때 쯤이면
그녀는 내게 달려와 화려한 옷 속에 감춰진
부드럽고 가녀린 팔을 내밀어요
그녀의 눈은 빛나고
갈색 머리칼은 흩날리네요
Sur le sable fin Et nous jouons au jeu d'Adam et Eve Jeu facile Qu'ils nous ont appris Car mon île c'est le paradis
고운 모래 위에서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게임을 하죠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쉬운 놀이
여기 낙원인 나의 섬 안에서
앙리 살바도르의 'Dans mon île'는 '나의 섬 안에서'라는 제목을 가진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게으른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섬이란 노래의 말미에 등장하듯 낙원과도 같은 곳인데, 이 노래의 부드럽고 달콤한 멜로디는 '파라다이스'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죠. 눈치 채셨겠지만 이 노래는 프랑스 음악가에 의해 만들어진 샹송입니다. 앙리 살바도르는 프랑스 샹송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한 명으로, 특유의 나른하고 감미로운 창법으로 잘 알려져 있죠. 브라질 음악을 소개하는 공간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를 소개하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앙리 살바도르가 브라질 보사 노바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음악가이기 때문인데요,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브라질 정부가 브라질의 최고의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인 브라질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죠. 같은 해에 함께 문화훈장을 수여받은 사람이 보사 노바의 위대한 음악가인 주앙 지우베르뚜 João Gilberto였습니다. 과연 앙리 살바도르가 브라질 음악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유추해볼 수 있겠죠. 오늘 이 아름다운 노래를 통해 들려드릴 이야기는 바로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앙리 살바도르는 브라질과는 비교적 가까운 곳인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태어난 만큼, 브라질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파리에서 살던 도중 전쟁을 피해 남아메리카와 브라질에서 거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교류했던 음악가들 중에는 아리 바루소 Ary Barroso나 도리바우 까이미 Dorival Caymmi 처럼, 브라질의 전설이 된 음악가들도 있었습니다. 앙리 살바도르는 그들과 교류하며 브라질의 독특한 정서와, 그들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색채를 흡수하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그가 작곡한 노래들에 남미 음악이나 브라질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반영하곤 했죠. 그의 낭만적인 샹송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것은 그가 이렇듯 다른 음악들의 색채를 적극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앙리 살바도르의 무대
‘Rose’, 'Dans mon ile' by Henri Salvador from the film <Europa di Notte>(1959)
첫 글(#1 'A Felicidade')에서 소개했듯, 브라질의 보사 노바가 탄생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보사 노바의 정형적인 형식과 정서는 60년대 초반에야 점차 완성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이죠. 그런 조빔이 보사 노바의 정서와 화성을 창조하는 데 있어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 바로 앙리 살바도르의 음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Dans mon île'의 멜로디와 화성, 노랫말과 거기 담긴 정서는 조빔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브라질을 마법에 빠뜨린 곡이라 불리기도 하고, 혹자는 보사 노바의 시초가 된 곡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조빔이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이탈리아 영화 감독인 알레산드로 블라세티 Alessandro Blasetti의 1958년작 영화 <Europa di notte>속에서였습니다. 이 영화 속에는 앙리 살바도르의 노래가 두 곡 사용되었는데, 'Dans mon île'와 'Rose'라는 곡이었습니다.('Rose' 역시 정말 아름다운 곡이에요.) 이 두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후 보사 노바를 창조한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영상에서 보듯이, 영화에 등장하는 'Dans mon ile'의 무대는 브라질을 연상시키는 배경으로 꾸며지고 있습니다. 삼바 축제에 등장할 법한 무희들이 등장하고, 살바도르는 그들 사이를 배회하며 노래를 부르죠. 조빔을 비롯한 브라질 음악가들이 이 무대를 보고 사랑에 빠졌으리라는 것을 상상해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 너무나 낯선 곡조가 함께 구성된 무대였으니까요. 노래가 끝난 뒤에는, 다시 익숙한 삼바 리듬에 맞추어 무희들이 춤을 추기도 하거든요. 브라질 음악가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브라질을 '새로운 감각 Bossa Nova'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바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매우 감미롭고 부드러운 곡조로 노래하는 것이죠. 그렇게 조빔은 앙리 살바도르의 목소리와 노래의 멜로디에 매료되어, 자신이 만들어오던 음악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영화에서 프랑스 가수가 샹송을 노래하는 장면이 브라질 보사 노바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세상의 많은 일들이 참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나요?
조빔은 이후에 자신이 살바도르로부터 받은 영향을 그에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실은, 앙리 살바도르 역시 이후 조빔이 만든 노래들을 즐겨 부르고 녹음했다는 사실이죠. 이전에 한 번 소개했듯, 프랑스와 브라질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문화적으로 무척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앙리 살바도르가 부른 조빔의 보사 노바는, 매우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브라질 음악가들의 노래와는 확실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또 다른 위대한 음악가인 호베르투 메네스칼 Roberto Menescal은 앙리 살바도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당신이 없이는 보사 노바는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보사 노바는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겁니다 Without you, Bossa Nova would have existed anyway, but without you, it would not have been the same at all." 그만큼 앙리 살바도르는 브라질 음악의 역사에 있어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음악가입니다.
'Dans mon île' by Caetano Veloso from the album <Outras Palavras>(1981)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곡은 까에따누 벨로주가 부른 'Dans mon île'입니다. 벨로주 역시 앙리 살바도르 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죠. 벨로주는 이 노래를 불어 그대로 불렀는데, 그가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노래들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이 느껴지죠. 특히 그는 브라질 뿐만 아니라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유럽 국가에서도 무척 인기 있는 가수였는데 그것은 그가 유럽에 거주하며 활동한 기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재 정권을 향한 저항 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하던 까에따누 벨로주와 지우베르뚜 지우 Gilberto Gil는 1968년에 군부 정권에 의해 체포된 이후, 반 년간의 투옥, 자택 연금 생활을 마치고 브라질에서 추방당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는데, 3년 간의 망명 기간 동안 유럽의 음악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특히 지우와 벨로주는 펑크 록과 브리티쉬 록에 무척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히피 문화, 레게 음악의 큰 영향을 받았죠. 이런 영향은 이후 그들이 트로피칼리아 음악을 정의해나가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에서는 벨로주의 노래가 널리 불리우는 편입니다. 벨로주는 자신의 노래인 'Reconvexo'에 "quem não sentiu o swing de Henri Salvador?"라는 가사를 넣기도 했죠. 직역하면 "앙리 살바도르의 스윙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는 뜻입니다. 벨로주가 리메이크 한 'Dans mon île'를 통해 앙리 살바도르의 음악은 점차 브라질에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앙리 살바도르의 여러 아름다운 앨범 중에서도 특히 보사 노바의 색채가 강하게 담긴 2012년작 앨범 <Tant de temps>은 브라질에서도, 우리 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Dans mon île' by Lisa Ono from the album <Dans mon île>(2003)
다음 소개해드릴 버전은 오노 리사가 부른 'Dans mon île'입니다. 이 버전에서는 오노 리사 특유의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일본 특유의 도회적인 무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앨범의 부제인 <La musique francais rencontre la Bossa Nova>는 '보사 노바를 만난 프랑스 음악'이라는 뜻인데요, 앨범의 제목 처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래들에 브라질의 색채를 더하여 표현한 곡들이 수록된 앨범입니다. 지난 번 소개드렸던 프랑스의 음악가 클라라 벨라 Clara Bellar의 앨범도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었죠(#4 'Noite Dos Mascarados'). 이렇게 프랑스 음악은 곧잘 브라질 음악과 어우러지곤 합니다. 오노 리사는 이 앨범에 'Dans mon île'를 수록했을 뿐 아니라, 'J'ai Vu'라는 곡에서 앙리 살바도르와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하기도 했죠. 이 앨범 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 음악을 포함해 세계의 여러 음악을 보사 노바로 재해석해서 부르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노 리사는 국내에서도 매우 친숙한 음악가죠. 반면 그가 정통 브라질 음악가라는 사실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내고 난 뒤 차차 일본과 브라질을 오가며 생활했는데, 라이브 클럽을 운영하며 브라질 음악계에서 일하던 아버지 덕에 일찍이 브라질 음악의 영향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 주앙 도나투 Joao Donato 등 위대한 브라질 음악가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죠. 오노 리사는 거의 모든 앨범을 오스카 카스트로 네베스 Oscar Castro-Neves, 유미르 데오다토 Eumir Deodato 등 유수의 브라질 음악가들과 함께 작업했는데요, 브라질 음악 특유의 정서를 제 2의 고향인 일본의 색채를 담아 표현한 음악들이 많죠.
브라질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매우 먼 나라이지만, 문화적,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가까운 나라입니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재외일본인 거주지이기도 한데요, 1900년대 초반 당시 브라질에는 농업 노동자가 부족했고, 일본의 농촌에서는 좁은 농토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하는 농민들이 많아 일본 정부는 브라질 이민을 적극 장려했습니다. 그 시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브라질로 건너가 브라질은 미국보다도 많은 일본 교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본과 브라질 사이에는 문화 교류가 매우 활발했습니다. 오노 리사 뿐만 아니라 일본은 전 세계에서 보사 노바를 가장 많이 부르고 사랑하는 브라질 외 국가이기도 합니다. 전설적인 브라질 음악가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공연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까요. 일본 음악가들이 재해석한 보사 노바 음악들에는 정말 독특한 일본적인 특징이 있는데, 그 미니멀하고도 도회적인 분위기가 보사 노바 음악과 너무 잘 어우러져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사 노바 음악가들 역시 차차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커피 문화가 일찍이 번영할 수 있었던 것도 브라질의 영향이 컸다고 하죠. ☺️
오늘은 한 곡의 노래를 통해 이런 저런 나라를 거치며 발전해온 보사 노바의 역사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음악의 운명은 참 신비롭죠. 1959년의 어느 날 브라질의 가장 위대한 음악가가 이탈리아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속에서 프랑스 가수가 샹송을 노래하는 장면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로부터 머잖아 그의 손에서 보사 노바라는 장르가 탄생했고, 이 장르는 브라질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일본, 미국으로 널리 퍼지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죠. 때로는 한국에 보사 노바라는 장르가 이토록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번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면 어느 정도는 귀에 익은 노래도 많고, 우리 정서에도 충분히 잘 어울리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에는 보사 노바 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적은 편이고, 보사 노바 음악가들 역시 무척 적은 편이죠. 한편 2016년에 까에따누 벨로주가 자라섬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호응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 기회가 더 많아진다면, 우리 나라에서도 좋은 브라질 음악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비와 볕>을 연재하는 목적은 그런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운 노래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이 아름다운 노래들이 품고 있는 독특한 정서를 이해했으면, 이 아름다운 노래가 거쳐온 짧고도 신비로운 역사를 알았으면, 여기 담겨 있는 사랑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어요. 가끔 친구들에게 '보사 노바 붐은 온다!' 농담 삼아 외치기도 하고요. 하지만 역시 보사 노바 붐은 온다, 다시 한 번 기록해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게으르고 행복한 봄날을 만끽하시길 손 모아 바랍니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