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Depois Enfim' by Cézar Mendes

노래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참 신비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노래가 어느 날 내 삶에 찾아오고, 그 노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우리 삶이 가진 가장 마법 같은 순간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으레 그렇듯, 그 방식은 무척이나 다양해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래를 사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특정한 어느 순간 완전히 매료되는 노래들이 있는 반면, 처음 들은 그 순간부터 강렬하게 매혹되는 노래들도 있죠.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종종 듣다가 십 년이 넘도록 듣게 되는 노래도 있고, 어떤 날씨와 어떤 기분에만 꼭 떠오르곤 하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 모든 마음이 결국 다 사랑이라고 가정한다면 저는 너무 헤픈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일지도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는 일이 (아마도) 노력의 여하에 달려 있지 않듯, 노래를 만나는 일도 비슷할 것이라 믿습니다. 거기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우연이 필요하고, 마침 준비되어 있는 마음이 필요하겠죠. 그렇게 만나게 된 음악과 사랑에 빠지고, 그 음악을 몇 년에 걸쳐 듣게 되는 일은 제게 한 사람을 결국 사랑하게 되는 일 만큼이나 의미있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감히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음악이 있는데, 그중 오직 어떤 음악들이 내 마음을 그토록 흔든다는 것,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음에 감사하게 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도록 만드는 노래를 만나는 것, 저는 그런 일에 마음을 기대어 두고 삽니다. 커트 보니것은 언젠가 위대한 예술가란 관중으로 하여금 지금 내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라 했죠.(그는 비틀즈를 꼽았습니다.) 어떤 사랑이 찾아올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활짝 열어두고 사는 방법 뿐일 것입니다. 하늘의 별 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음악 가운데서도 제 마음이 브라질의 음악에 특별히 감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왜 세븐 코드와 싱커페이션으로 이루어진 곡들에 금방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것일까요?

'Mande um Sinal' by Cézar Mendes with Djavan


오늘은 특별히 하나의 곡이 아닌, 하나의 앨범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오늘 소개할 앨범은 브라질의 숨겨진 작곡가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인 세자르 멘데스 Cézar Mendes<Depois Enfim>이라는 앨범인데요, 이 앨범은 브라질의 뛰어난 음악가들이 노래한 멘데스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앨범을 통째로 소개하기로 마음 먹은 건 역시, 제가 이 앨범을 너무나, 더 없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기 때문인데요. 한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라, 제게는 너무나 특별한 앨범입니다. 앨범을 구성하는 노래들의 완결성, 노래의 순서와 전체 앨범의 길이 등을 포함한 앨범의 구성, 이 앨범에 참여한 모든 음악가들... 모든 면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더 놀라운 점은, 이 앨범은 세자르 멘데스가 67세의 나이로 발표한 첫 앨범이라는 사실입니다.


'Mande Um Sinal'은 앨범을 여는 첫 곡으로, 자반 Djavan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자반은 삼바, 보사 노바, MPB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음악가로, 브라질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한 명이죠. 그는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해서, 까에따누 벨로주 Caetano Veloso, 마리아 베타니아 Maria Bethania, 시쿠 부아르키 Chico Buarque, 카르멘 맥래 Carmen McRae 등을 위한 곡을 쓰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호를 보내요'라는 제목을 가진 이 곡은 연인에게 돌아와달라며 용서를 구하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돌아온다면, 내 모든 삶을 사랑에 바치겠다고 이야기하는 자반의 목소리가 참 감미롭죠. 후렴부의 신호를 보내는 듯한 스캣은 이 곡의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묘미이기도 하죠.


세자르 멘데스의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간결함입니다. 그의 노래는 대부분 4분을 넘지 않으며, 곡의 구성도 간결한 편이죠. 이런 특징은 일전에 소개해드린 도리 까이미 Dori Caymmi 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한데, 그에게서 기타 교습을 받았던 지우베르뚜 지우 Gilberto Gil의 아들인 벵 지우 Bem Gil는 도리 까이미의 간결함과 주앙 지우베르뚜의 지적임이 세자르 멘데스의 음악과 삶에 배어 있는 중요한 특징이라 말하기도 했죠. 멘데스의 음악이 대체적으로 느리고 간결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데에는 그가 가진 병의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어 몸의 움직임이 느린데, 그래서 흔히 브라질 음악에서 등장하는 불규칙한 리듬과 화려한 즉흥 연주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세자르 멘데스는 그가 특히 동경했던 주앙 지우베르뚜의 기타 연주와는 완전히 다른 기타 연주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 동시에 그런 한계가, 이토록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음악을 구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Flor do Ipê' by Cézar Mendes & Marisa Monte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곡은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인 'Flor do Ipê' 입니다. 노래의 제목인 'Flor do Ipê'는 브라질의 국화인 능소화목 황금 트럼펫 나무의 꽃을 일컫는 말인데요, 학명인 'Tabebuia Chrysotricha'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듯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이 곡을 부른 마리사 몬치 Marisa Monte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디바죠. 동시에 이 앨범을 제작한 훌륭한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이 곡은 자신이 세상 어느 곳에 가든 사랑을 마음에 품고 다닐 것이라 노래하고 있는데요, 동시에 곡의 제목을 떠올려 보면, 브라질의 국화는 브라질의 국민들로 하여금 사랑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곡에서는 까에따누 벨로주의 아들인 통 벨로주 Tom Veloso가 기타를 연주했는데, 마리사 몬치와 통 벨로주는 모두 세자르 멘데스에게 기타를 배운 제자입니다. 세자르 멘데스가 본격적으로 작곡 활동을 하고, 앨범 발표를 하기 이전에는 오랫동안 수많은 브라질 음악가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까에따누 벨로주 역시 자신의 아들들을, 지우베르뚜 지우 역시 자신의 두 아들을 멘데스에게 맡겼죠. 세자르 멘데스의 기타 연주는 매우 부드럽고도 느리고, 서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후에 통 벨로주의 음악을 들어보면 그런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앨범에서 역시 세자르 멘데스와 통 벨로주가 함께 기타를 연주한 곡들이 많고요.

'Um Só Lugar' by Cézar Mendes & Tom Veloso


통 벨로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소개하는 이 곡은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Um Só Lugar'입니다. 이 곡에는 까에따누 벨로주의 두 아들인 통과 모레노 벨로주가 참여했습니다. 아, 정말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곡이에요. 통과 모레노가 번갈아가며, 또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이 둘은 그들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서정적인 감각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하죠. 이 곡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벨로주 가의 남자들이 모두 모여 만든 공연에서 부른 버전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 곡은 통과 세자르가 함께 만든 곡인데, 그들은 곧잘 노래를 함께 만든다고 합니다. 통은 멜로디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세자르가 노래를 만들 때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하죠. 가사 역시 통 벨로주가 붙였는데, '하나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이 곡의 가사는 역시 사랑에 대한 것으로, 여기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당신의 것이니, 모든 고통을 내려 놓고 두 개의 강이 하나로 결합하도록 만들자는 내용입니다. 연인과 비로소 하나로 결합하고자 하는 사랑의 정서가 돋보이는 곡이죠.


이 앨범의 독특한 점은 앨범에 참여한 음악가들이 서로 모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인데요, 그래서인지 매우 편안한 분위기의 노래들이 많고, 마치 가족 모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족만큼이나 친밀한 사이의 음악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편한 마음으로 함께 만든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Aquele Frevo Axé' by Cézar Mendes & Fernanda Montenegro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곡은 'Aquele Frevo Axé' 입니다. 이 곡은 세자르 멘데스에게도 특별한 곡인데, 작곡가로서 세자르 멘데스가 처음으로 조명을 받은 곡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8년에 가우 코스타 Gal Costa가 부른 이 노래가 큰 사랑을 받았고, 이후로 까에따누 벨로주가 이 곡을 다시 부르면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죠. 벨로주의 근작 앨범 중 클라리넷 연주자인 Ivan Sacerdote와 함께 브라질의 노래들을 클라리넷과 기타 편곡으로 부른 앨범이 있는데, 그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 버전의 이 곡도 무척 아름다우니, 꼭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곡은 연인이 떠난 자리를 축제가 끝난 뒤의 정경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곡입니다. 당신이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축제의 빛나는 빛과 아름다운 무대가 펼쳐지길 바라는 내용이죠.


이 앨범에서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바로 브라질의 대배우인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Fernanda Montenegro인데요, 그는 브라질 배우로서는 유일하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을 만큼 브라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언젠가 세자르 멘데스가 그와 그의 딸에게 조빔의 노래를 불러준 날이 있었는데, 그 노래를 듣고 곧장 울음을 터뜨렸다고 해요. 그런 인연으로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고,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죠. 그는 세자르 멘데스의 음악이야말로, 그의 출신지인 바히아 Bahia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가장 잘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Carnalismo' by Cézar Mendes & Caetano Veloso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곡은 까에따누 벨로주가 부른 'Carnalismo'입니다. 첨부된 동영상에서는 기타를 연주하는 세자르 멘데스의 모습과 벨로주의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곡은 본래 마리사 몬치와 아르날두 안투네스 Arnaldo Antunes, 카를리뇨스 브라운 Carlinhos Brown의 그룹인 Tribalistas의 곡입니다. 아르날두 안투네스와 마리사 몬치와 세자르 멘데스가 함께 만든 곡이고, 이 두 음악가는 모두 이 앨범에서 노래를 불렀죠. 지면이 부족해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이 앨범에서 아르날두 안투네스가 부른 'Tiranizar'라는 곡 역시 무척이나 아름다운 곡이니, 한 번쯤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인간이 유독 음악에 쉽게 감응하도록 진화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아름다운 소설, 아름다운 영화, 아름다운 영화와 그림을 비롯한 모든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 매료되곤 하는데, 그중 유독 음악에 더욱 쉽게 감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음악이 다른 장르의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상하기에 편하고, 접근하기 용이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인간이 특별히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도록 진화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누구나 스스로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노래가 한 곡 쯤은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인간은 음악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한 훈련을 거치지는 않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성장기를 거치며 음악에 대한 취향과 기호를 발전시키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마음에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키는 주파수를 찾아내곤 합니다. 음악을 즐기고 좋아한다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죠. 저는 매번 우리가 이토록 가까이 묶여 있으면서도 서로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이 취향에 대한 이야기들이 제게는 언제나 흥미롭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늘 궁금해 하곤 하죠. 오늘도 이 음악들을 향한 저의 깊은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모두에게 행복한 오 월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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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ans mon île' by Henri Salvador